[2026-06-17]
이란의 인터넷 접속이 마침내 복구되었습니다. 온라인 제자 양육과 멘토링으로 이란 청년들을 섬기는 오픈도어 현지 동역자 파하드(Farhad)는 그동안 생사를 알 수 없었던 기독교인 청년들과 다시 연락이 닿았습니다. 파하드 동역자가 전해온 최근 대화 속에는, 수개월 동안 암흑 같은 불확실성과 고립, 단절의 시간을 견뎌낸 이란 성도들의 눈물겨운 고난과 그 속에서도 피어난 소망의 소식이 담겨 있습니다.
오랜 기간 인터넷이 차단되고 통신이 통제되면서, 이제 이란인들은 인터넷을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특별한 혜택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파하드 동역자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터넷은 당연한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통신이 재개되었다고 해서 축하를 나눠야 하는 현실이 서글픕니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일 뿐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토록 답답한 상황 속에서 파하드 동역자에게 가장 큰 위로와 격려가 된 것은, 세상과의 모든 연결이 끊겨 소통이 불가능해진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란 청년들의 삶 가운데 멈추지 않고 일하고 계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최근 몇몇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신실한지 다시금 뼈저리게 깨달았거든요. 인터넷이 막히고 교회 모임이 완전히 끊어진 그곳에서도, 그리스도의 빛은 여전히 세상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디지털 암흑 속에서 마주한 눈물
그중 한 청년 형제의 이야기가 특히 마음을 울립니다. 이 청년은 수년간 제자 훈련을 받으며 믿음이 굳건하게 자란 지체로, 직접 청소년 수련회를 기획하고 인도할 만큼 성숙한 청년이었습니다. 사역자로서 청년 그리스도인에게 바라는 모든 아름다운 모습들이 영글어가던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 동안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면서 이 청년 역시 깊은 영적 침체를 겪어야 했습니다. 연락할 방법은 없고, 보낸 메시지에는 답장이 없었으며, 그렇게 흐른 시간은 어느새 몇 달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통신이 복구되어 다시 연락이 닿았을 때, 청년은 깜짝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암흑 같던 그 시간 동안 파하드 동역자를 비롯한 수많은 지체가 자신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형제가 제게 ‘그동안 메시지를 전혀 받지 못했어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다 우리가 자신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고 늘 생각하며 기도했다는 걸 깨닫는 순간, 형제의 눈망울에 가득 고이던 그 기쁨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감동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디지털 암흑과 검열 속에 갇히면, 사람들은 세상 모두가 나를 잊었다고 생각하며 깊은 외로움에 빠지기 쉽거든요.” 파하드 동역자의 설명입니다.
“그저 누군가 나를 찾아주고 안부를 물어보려 애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는 법입니다.” 이란 땅에서 홀로 무거운 책임을 지고 지체들을 섬기던 청년 리더에게, 국경 너머 전 세계 교회와 성도들이 자신을 기도로 기억하고 있었다는 소식은 지친 무릎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고립 속에서 조용히 일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역사는 고립의 시간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청년 자매는 극심한 가정 불화와 개인적인 시련을 통과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을 통해 자매의 내면을 정금같이 빚고 계셨습니다.
“지난 6개월 사이에 모든 상황이 마술처럼 바뀐 건 아닙니다.” 파하드 동역자는 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매의 손을 잡고 그 깊은 수렁을 함께 걸어가 주신 것입니다.”
하마터면 비극으로 끝났을지도 모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한 손길은 자매를 안전하게 보호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두가 버려지고 철저히 혼자라고 느꼈던 그 메마른 계절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란 성도들이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가혹하기만 합니다.
지금 이란 내의 성도들은 일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집단적인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짓누르는 경제난,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 깊은 두려움과 정서적 고갈이 모든 이를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파하드 동역자는 이란 땅을 향한 기도를 눈물로 호소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붙잡을 수 있는 예수라는 소망이 있지만, 이란 땅의 수많은 사람은 지금도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습니다. 오랜 세월 믿어왔던 체제와 종교에 환멸을 느끼며 간절하게 변화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예 신은 없다고 절망하고, 또 어떤 이들은 분명 이것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있을 거라며 진리를 갈망합니다. 지금 이란은 소망을 찾아 헤매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그렇기에 지금이 바로 우리가 이란을 위해 눈물로 중보해야 할 골든타임입니다. 그들은 간절하게 참된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고난 속에 세워지는 현지 리더십
이런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놀라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감시와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모이기를 힘쓰는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통신이 완전히 끊기고 단절된 암흑기에도, 성도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모임을 이어가기 위해 목숨을 건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최근 몇 달간의 사태를 겪으며, 파하드 동역자는 이란 내부 성도들이 스스로를 이끌고 제자 삼을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추는 게 얼마나 시급한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국외 사역자들과의 소통이 완전히 차단되는 위기가 언제든 찾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역이 국외에 있는 리더 한 명에게만 의존되어 있다면, 그 리더와 연락이 끊기는 순간 현지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가 반문했습니다.
그렇기에 비교적 상황이 안정적일 때 지혜롭게 현지 동역자들을 훈련하고 제자 양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외부와의 연결이 완전히 차단되더라도 현지 교회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영적 자양분과 리더십을 키워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파하드 동역자의 간절한 기도는 이란의 성도들이 어떤 고립의 시기가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는 성숙함과 확신을 가지고 서로를 든든히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숨죽인 듯 고요하고 캄캄해질지라도, 그리스도의 빛은 결코 꺼지지 않고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당연하게 여기는 위험
파하드 동역자는 최근 한 그리스도인 자매와 나눈 가슴 아픈 대화를 소개했습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터넷 차단과 핍박 속에서 어떻게 학업과 직장 생활을 이어왔느냐는 질문에 자매는 덤덤하게 대답했습니다.
“어쩌겠어요? 그냥 익숙해진 거죠.”
이 대답은 파하드 동역자의 가슴을 쳤고, 느헤미야 1장의 말씀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소식을 들었을 때,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탄 채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살던 주민들은 매일 마주하는 그 황폐함에 어느새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피눈물을 흘리며 당장 성벽을 재건해야 마땅할 비극이, 어느덧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파하드 동역자는 오늘날 이란 땅과 전 세계 교회에도 이와 똑같은 영적 영양실조가 찾아올까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서바이벌 모드로 살아가는 데 너무나 쉽게 익숙해집니다. 억압과 불의, 폭력과 고난을 너무 오랫동안 겪다 보면, 그것을 그저 당연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에 너무 쉽게 길들여집니다”라고 파하드 동역자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이 주신 당연한 권리마저 잊어버리게 되지요.”
그의 염려는 단지 이란 땅의 성도들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란이 겪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피할 수 없는 당연한 일처럼 무감각하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경종을 울립니다. 현실에 안주하여 무뎌질 것이 아니라,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품고 깨어 기도하며 그들의 아픔에 소리 높여 응답해야 합니다.
사방이 막힌 현실 속에서도 파하드 동역자는 다시금 눈을 들어 소망을 선포합니다. “제 안에는 뜨거운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세대에, 이 이란 땅 가운데 분명히 위대한 일을 행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칠흑 같은 침묵과 불확실성, 철저한 고립의 한가운데서도 주님이 여전히 살아 역사하고 계신다는 증거를, 저는 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