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박해 현장

사우디아라비아의 박해상황

 1. 박해원인

이슬람교의 탄압(Islamic oppression): 사막왕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근본주의, 즉 이슬람 교리를 엄격히 준수하는 와하비즘(Wahhabism)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가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성지인 메카(Mecca, 이슬람의 창시자인 예언자 무함마드의 출생지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 종교, 행정, 상업 중심지)와 메니다(Medina, 무함마드의 묘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내륙 도시)를 관할한다. 사우디 정부는 왕실 통치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이슬람 무장 세력과 투쟁 중에 있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재정으로는 외국 이슬람 무장 세력을 후원하고 있으며, 이라크(Iraq)와 시리아(Syria) 등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는 이슬람 수니파(Sunni, 이슬람 최대 종파)의 무력 충돌의 주요 근원지 중의 하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법률 체계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Sharia)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배교(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 행위로 기소된 국민은 개종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민족적 적대감(Ethnic antagonism): 민족적 적대감은 전형적으로 사회 구성원에게 민족 내부의 오래된 규범 및 가치를 준수할 것을 강요하는 압력을 형성시킨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민족적 적대감은 이슬람 사상과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는 특히 무슬림 출신의 기독교 신자(Muslim Background Believers, MBB)에게 타격을 가져온다.

 1. 박해배경

사우디아라비아의 많은 청년 인구와 노쇠해져 가는 통치자들 사이의 단절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인구의 대다수가 서른 살 미만이며, 위성TV와 인터넷 그리고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젊은 세대의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젊은이들은 특히 여성들이 더 많은 자유를 갈구하고 있으며, 종교 경찰에게 단속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고(故)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 사우디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허용하기로 선포한 것은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또한 심각한 수준의 청년 실업 문제가 광범위한 사회적 불만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사우디 젊은이들을 이슬람 과격주의로 내몰 가능성이 다분하다. 빈부 격차로 인해 크게 분열되어 있는 사우디 사회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한편 사회적 불만은 늘 존재해왔던 것이고 그 동안은 국민배당이라는 이름의 거액의 뇌물로 매수 되어져 왔다. 사회적 불만이 생겨난 것은 적어도 이십 년 전의 일이다. 예를 들면 여성이 운전대를 잡는 등 시민 불복종 행위가 꾸준히 이루어져왔다. 나아가 이슬람 수장들 역시 인터넷 혁명을 맞이했다. 몇몇 이맘(imam, 이슬람교 지도자)들은 트위터를 개통하여 수많은 팔로워들을 거느리고 있기도 하다. 이슬람교 그리고 다른 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인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새로운 신앙을 드러냄에 있어서도 한층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변했다.

 1.
박해 받는 교회의 유형 두 가지


*외국인 또는 이민자 기독교 공동체: 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단기간 체류하는 외국인 또는 이민 노동자들이다. 외국인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서구 국가에서 온 이들이다. 반면 이민자들은 인도, 필리핀 그리고 아프리카와 같은 중,저소득 국가(지역)에서 유입된 경우가 많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의 노동자들은 형편 없는 임금에 노동력을 착취당할 뿐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신분과 낮은 사회적 지위, 그리고 기독교인이라는 점으로 인해 끊임없이 언어적, 신체적 폭력에 노출되고는 한다. 외국인과 이민자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무슬림에게 공유하는 것과 예배 모임을 가지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구금되거나 나라에서 추방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슬림 배경을 가진 기독교인들(MBBs)에게는 더 많은 압력이 가해진다.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의 공동체: 대부분 무슬림배경의신자들(MBBs)이다. 몇 사람 되지 않는 사우디아라비아 MBBs들은 기독교 신앙을 철저히 비밀리에 부치고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중 다수는 위성TV로 송신된 기독교 방송에 반응했거나, 환상이나 꿈에서 하나님을 직접 만난 경험을 통해 기독교인이 되었다. 신에게 순종하고자 하는 진실된 갈망을 가지고 성지 순례(Hajj, 이슬람교의 성지 메카 순례)에 참여했던 무슬림들이, 자신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환상을 보게 되었다는 간증들이 있다. 인터넷도 사우디인들이 기독교 자료를 접하게 되는 창구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인터넷의 사용은 사우디아라비아 정권의 삼엄한 통제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극소 규모이지만 사우디 MBBs의 수는 증가하고 있으며, 그들 역시 점점 더 담대함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이나 기독교 위성방송에서 자신의 신앙을 간증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공개적인 행동은 가족이나 정부의 심각한 핍박을 불러오게 된다.

 1.
삶의 영역에서의 박해 정도와 폭력


*박해개요: 사우디아라비아의 기독교 박해는 다음과 같은 양상을 보인다.

 *
사우디 기독교인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의 평균치는 14.892로, 극도로 높은 수준(extreme)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는 WWL2016에서 측정된 14.620보다 아주 조금 상승한 수치이다.

 *
전반적인 삶의 영역 에서의 압력 지수는 가족 영역을 제외하고 모두 극단적인(extreme) 수준을 기록했다. 가족 영역의 압력 지수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대부분 홀로 사우디에 와있는 외국인과 이민자 기독교인들은 가족으로 인한 핍박을 경험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평균치가 낮춰진 것이다.

 *
교회와 국가 영역의 압력은 가장 극단적인 수준이다. 이는 이슬람교의 탄압 요소로 박해 받는 국가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
이슬람교의 탄압과 혼합된 민족적 적대감 요소로 인한 압력은 주로 개인과 가정 그리고 사회 영역에 반영되며, 특히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MBBs들에게 강하게 반영된다.

 *
접수된 폭력 사건은 2016년보다 적었다.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었다거나 기독교인들의 모임이 피습되었다는 확인된 소식 입수 건이 작년보다 적었다. 폭력 지수는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사우디 기독교인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도록 자신의 행동을 극도로 조심하기 때문이다.

 *
전체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기독교 박해 상황은, “모든 국민이 무슬림일 것을 요구하는 국가에서, 주민 모두에게 사회와 정부로부터 강한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고 묘사할 수 있다.


• 개인영역: 무슬림배경신자들(MBBs)은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개종한 신앙이 주변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을 전도하지 않는 한, 사우디에 거주하는 기독교 외국인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이민 노동자들은 신중히 행동해야 하며, 박해는 노동자 수용소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민 노동자들의 종교와 태도에 달려 있다.
• 가족영역: 모든 사우디인들은 무슬림에 속한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이슬람을 떠나는 것을 큰 수치로 여긴다. 무슬림배경신자들(MBBs)은 신앙이 발각되면 가정과 지역사회로부터 물리적 폭력과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족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기독교식 결혼은 축하 받지 못하며, 무슬림배경신자들은 반드시 이슬람 예식에 따라 결혼해야 한다. 무슬림배경신자들의 자녀는 기독교인으로 등록될 수 없으며, 기독교식 이름을 지을 수 없다. 학교에서 무슬림배경신자 가정의 자녀들은 반드시 이슬람 수업에 참석해야 한다. 이혼으로 인한 자녀 양육권과 유산 상속 문제에 있어서도 무슬림배경신자들은 불이익을 받는다.
• 지역공동체영역: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양한 차별로 인해 신앙을 포기하게끔 압력을 받고 있다. 기독교 개종자들은 자신의 신앙이 직장에서 알려지게 되면 괴롭힘과 차별을 당하게 된다. 타종교 신자들에 대한 반감이 사우디 사회에 팽배해 있다. 기독교인들을 포함해 이민 노동자들은 직장 내 상사들로부터 언어적, 물리적, 성적 학대에 노출 돼 있다. 지역사회는 국제학교에서 방학 동안 성탄절과 새해와 같은 반이슬람적인 휴일을 보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금지법을 위반하는 학교는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 국가영역: 사우디 헌법과 기본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명시돼 있지 않다. 법률제도는 샤리아(Sharia) 법을 기반으로 하며,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은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무슬림들은 다른 종교인들 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진다. 무슬림배경신자들의 신앙이 알려지게 되면 당국에 조사를 받게 됨으로써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기독교 외국인들과 이민자들이 무슬림을 개종시키려 한다면, 감옥에 감금되거나 강제 추방으로 이어질 수 있어 삶의 영역 안에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 교회영역: 사우디아라비아 안에는 교회건물이 없으며, 예배는 은밀한 곳에서 드려진다. 사우디 정부는 공식적으로 비무슬림자들의 예배를 허용하고 있지만 종교경찰인 무타와(Muttawa)는 이러한 법률적 권리를 준수하지 않는다. 예배는 성별을 엄격하게 분리함으로써 다른 가정의 남자와 여자들과 함께 한 방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이것이 공식적인 법안은 아니지만, 개개인의 종교 활동에 대한 법적 규제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으며 언론을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내용에 따라 나타나고 있다. 무슬림을 개종시키는 행위와 성경 훈련, 아랍어로 된 성경 및 다른 기독교 관련 문서들을 편찬하거나 수입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 폭력영역: 비록 교회 습격과 많은 기독교인들이 체포 됐던 작년보다 올해 기독교박해지수가 낮아지긴 했지만 반기독교적 폭력 면에서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작년과 달리 올해 박해지수에는 강간과 성희롱 문제가 떠올랐다. 이러한 문제는 대부분 사우디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기독교 이주 노동자들에게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난다. 많은 무슬림배경신자들이 가정과 주위사람들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그들의 신앙이 알려지는 순간 주위로부터 격렬한 반응을 경험케 됨으로써 두려움에 놓이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신앙 때문에 육체적 학대와 위협을 경험했다는 많은 보고서가 있다. 또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조국을 떠나도록 강요 받는다. 무슬림배경신자들은 이슬람을 배교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는 커다란 위험에 처해 있으며 최근 알려진 바에 의하면, 배교의 이유로 비공식적인 처형이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규정 외의 법률적 살인 위험이 가정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시도되어서는 안 된다.
미래전망
경제정보연구소(Economist Intelligence Unit)의 연간 예측 보고서에 따르면, 왕세자로 지명된 무하메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은 사우디 청년들과 관련된 사회적 제약들을 완화시켜 줌으로써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가 상승했다. 이것은 무하메드 빈 나예프(Mohammed bin Nayef) 왕세자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관대한 지도력과 전통적 뿌리로부터 벗어나려는 사우디 정부의 정책 변화는 자유를 갈망하는 수많은 젊은 층을 겨냥한 의도일 수 있다. 아랍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사우디 청년의 90% 이상이 사우디 지도부가 여성 권리와 자유를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이번 조사를 통해 아랍의 청년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청년들이 트위터나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매체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보도했다. 그럼에도 극단적 보수주의 이슬람세력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활발하게 활동함으로써 사우디 사회가 변화되는 걸 원치 않고 있다. 사우디의 개혁은 사실상 극단주의 보수단체들에 의한 소수민족 박해(기독교 포함)와 박해 대상의 확대로 이어지는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
국제적인 관점에서는 예멘과 다른 나라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란과의 권력다툼이 가장 두드러진 외교 현안일 것이다. 권력 다툼, 정부와 이슬람국가(IS)간의 대립, 또 다른 이슬람 과격분자의 활동으로 인해 사우디 정부는 기독교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없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종교적 제약이 박해의 핵심인 이슬람 세력의 탄압으로부터 온다는 전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올해도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적 소수집단의 탄압은 한층 발달된 방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파키스탄의 상황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들
군주제와 종교 지도자 사이의 긴장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제 군주제와 7천명 가량의 ‘사우디 가(the House of Saud)’로 불리는 로얄 패밀리로 구성돼 있다. 이들 중 약 2백여명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수년 동안 그들 대부분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에서는 정당이 허용되지 않으며 2011년 확산된 ‘아랍의 봄’ 시위 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개혁을 부르짖는 요구가 있었고 여러 도시에서 소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소수 개혁이 시행되었고 공공분야의 임금이 인상되었다. 종교 관계자들과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도 조금씩 경제적인 혜택이 제공되고 있지만 상황은 여전히 통제 받고 있다.
종교기관과 ‘사우디 가’의 관계는 불안정하며 서로 이해관계가 어긋나 있다. 그러나 미 전략분석업체인 스트랫포(Stratfor)는 이러한 관계가 ‘사우디 가’의 성공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가’와 종교지도자들의 관계는 사우디 통치에 있어 중요한 기둥과도 같다. 정부 당국으로부터 종교적인 합법성과 지휘권을 제공 받고, 상충되는 대내외 정책의 균형을 맞춰 주기 때문이다. 양쪽의 전력 요소는 사우디 사회를 결합시키는데 있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의 관리자이자, 이슬람의 성지
이 사막 왕국은 이슬람 선지자 마호메트(Mohammed)의 탄생지이며 메카와 메디나(Mecca and Medin) 지역에 있는 이슬람 성지를 통괄하고 있다. 와하비즘(Wahhabism)은 이슬람근본주의 운동으로써 과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슬람 외 타종교는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없으며, 사우디 아라비아는 메카(Mecca)에 자리한 이슬람 선교조직 “무슬림 세계 연맹(Muslim World League)”을 통해 국경을 초월한 거대한 선교활동 자금을 조달 받고 있다. 이슬람 개종을 위한 인쇄물과 선교사들을 해외로 파송하고 있으며,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모스크 사원을 건축하고 있다. 또한 이슬람 선교학 과정을 개설한다는 조건 하에 여러 학문 기관을 지원하고 있으며, 코란(Quran)과는 별개로 비 이슬람교도들에게 반감을 갖게 하는 서적을 매년 수출하고 있다. 개혁을 약속했지만 사우디 교과서에는 여전히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종교적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
시아파에 대한 공격성
시아파(Shiites)는 전체 인구의 8%에 해당되며 그들 대부분은 석유가 풍부한 동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그 동안 사우디 통치자들 사이에서 대대로 이단자로 간주되었던 시아파는 오늘날까지도 이단자로 취급 받으며 사법제도, 교육, 정부직, 종교활동에서 차별 받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정치적 참여와 종교적 활동이다. 조직적인 차별을 없애려 했던 압둘라(Abdullah) 사우디 국왕 시절, 그들의 상황은 잠깐 동안 나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종파간 긴장감으로 이어지면서 관용과 다원주의에 대한 그들의 희망은 점점 사그라졌다.
테러방지와 지원
젊은 세대에 만연한 실업과 불만,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면서 사우디 왕국은 극단주의자들의 온상이 되었다. 사우디 정부가 로얄 패밀리에 위협을 가하는 국내 테러조직과 투쟁하고 있지만, 국외 테러단체에 대한 지원은 사실상 이뤄지고 있지 않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세계적인 수니파(Sunni) 테러범들에게 있어 가장 큰 자금 조달처이다. 2014년 2월부터 효력을 가진 테러방지법으로 국외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사우디인들과 테러활동을 지원하는 사람들에게 처벌을 가하고 있지만, 상황이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에 따르면 2014년 2월 3일 사우디 정부가 내무부에 추가적인 권력을 이양함으로써 구속된 사람들의 인권 침해를 합법화시켰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국제인권감시기구인 인권감시위원회(Human Rights Watch)는 해당 법안이 테러의 정의를 뚜렷하게 명시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평화적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까지도 해당 법안에 적용될 수 있어 악용될 위험이 있다. 해당 법안은 사우디 시민뿐 아니라 사우디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도 포함되며, 사우디의 국왕, 경제, 국가, 사회의 안전을 침해 할 경우 적용된다. 그만큼 전 세계 기자들과 인권활동가들, 특히 사우디 내에서 종교자유의 침해를 밝히려는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석유 수출과 외국인 노동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제
사우디아라비아는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석유(88%)와 가스산업(90%)이 수출이익과 정부 총수입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공공분야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약 90%에 해당되는데 이는 경제적 다양성의 결핍으로 청년 실업 증가와 불만족,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다. 정부는 사우디인들을 대상으로 직업 창출을 시도했으며, 그 내용에는 사우디 내국인들에 대한 일자리 할당량과 급여 인상을 포함하고 있다. 일자리 할당량을 고수하는 기업에는 비자 신청 시 혜택이 있는 반면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기업에는 혜택이 제한되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교회의 과거와 현재
기독교 유입과정
현재 사우디 아라비아 지역은 과거 유대인들과 네스토리아파(Nestorians) 기독교의 교회 건물들, 성직자와 회당들이 존재했었다. 동부지역의 주바일(Jubail) 지역 근처에는 아직까지도 그러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사우디의 기독교 역사는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가장 오래된 교회가 남아있기도 하다. 어떻게 아라비아 반도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는지 다양한 가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남부에 위치한 나즈란(Najran)의 상인이 현재 이라크 지역으로 여행하던 중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설이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5세기 초 가정교회를 세웠다. 또 다른 설은 로마 황제 시절 사절단의 이야기이다. 사절단 중 한 명이 사우디 아라비아의 힘야라이트(Himyarite) 왕조에 복음을 전했고, 그로 인해 왕이 개종했다는 설이다. 두 이야기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몇몇 지역에서 부분적으로 교회가 세워졌고, 그곳을 중심으로 기독교인들이 모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우디 아라비아 반도의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첫 기독교 도시인 나자란(Najran)에서 200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순교했던 사건이다. 힘야라이트 왕조의 유수프(Yusuf) 통치자는 AD 523년 기독교인들이 유대교로 개종을 거부하자 이들을 학살했다.
이슬람이 다스리던 7세기부터 10세기동안 유대교와 기독교는 강제적 또는 자발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 당했으며 많은 이들이 추방 당했다.
교회조직
오늘날 사우디는 공식적으로 기독교 예배를 금지하고 있다. 국민들은 오직 이슬람교만을 믿게 되어 있다. 약 100만명의 기독교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 아시아와 아프리카, 서구지역의 외국인들이다. 기독교 이민자들 다수는 필리핀과 인도 출신의 천주교인들이다. 기독교 이주민들은 주요 도시에서 소규모 모임을 비밀리에 갖고 있으며 어떤 도시에서는 종교 모임이 허락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다른 지역에서는 체포되기도 한다. 이들을 제외하곤 무슬림이 아닌 공공예배는 허락되지 않으며 이 나라에서는 교회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무슬림배경신자들 (MBBs)의 소그룹 모임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기도와 간구의 열매로써 큰 의미가 있으며, 구체적인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민족적, 종교적 상황
사우디 아라비아는 와하비파(Wahhabism)에 의해 메타와 메디나라는 이슬람 성지 도시의 수호자로 정의된다. 다른 종교들은 공개적인 활동이 허락되지 않는다. 약 8%의 시아파(Shiite)가 존재하며 차별로 고통 받고 있다.